얼마전 후배에게 부탁해 사온 책중 한권인 시스템 사고에 대한 리뷰입니다.
어제 저녁부터 읽고 오늘 다읽었으니 하루만에 다 읽었네요. 먼저 간략히 평하자면,
절대 사면 안되는 책입니다. 돈이 아까운 책입니다. 무료라도 이런책은 피하는게 좋을듯하네요.
저자가 복잡계 시스템,시스템역학등을 제대로 이해하는지조차 의심이 가는 책입니다.
(왜 그런지에 대한 이야기는 이후 다시 적겠습니다.)
책에서 언급한 비유와 서술하는 맥락이 맞지가 않습니다. 곳곳에 맥락에 맞지않는 성경구절이라든지 잠언을
넣은것은 저자가 종교인이라는것을 자랑하는것인지 모르겠네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종교인이
쓴 책은 일단 내용에 반은 의심하고 들어갑니다. 물론 가끔 좋은책도 있습니다만...)
이 책에서 유일하게 얻을수 있는 가치는 저자가 번역한 외국 서적의 내용들입니다.
저자가 설명하는것을 참고하지말고 외국서적의 인용 자체에만 중점을 두고 참고한다면 얻을수 있는점도
조금 있을듯 합니다만 차라리 복잡계 및 시스템역학에 관한 저명한 학자의 서적을 읽는게 얻는 정보는
많을듯하네요.
시스템 사고는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수단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자료를 조직화 할수 있는 분석도구이다.시스템 사고의 효용성은 지금까지의 어떤 모델보다 근사한 모델을 제시한다는것에 있는것같다.
시스템 사고는 잘 정리되고 계량화된 지표들을 넘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단편적인 정보를 모아 시스템에 관한 모델을 구착하도록 도와준다. 이러한 점에서 시스템 사고는 '풍부한 정보 그러나 빈약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구조 - 요소(element)어떤 사건(event)의 반복적인 패턴을 결정하는 구조를 찾고 그 관계를 분석하는것이
시스템 - 관계(relation)
- 행태 - 사건(event)
- 패턴(pattern)
시스템 사고의 초점 관계와 패턴
시스템 사고의 목표인듯 하다.
구조는 행태를 결정하고 , 행태는 구조를 변화시킨다. 이것이 시스템 사고의 기본적인 전제이다.구조와 행태의 관계가 서로 영향을 주고있다. 즉 feedback 순환고리가 연결되어져 있다고 볼수있는듯.
구조가 행태를 결정짓는다는 원리가 이해의 맥락(context of understanding)에서 중요하다면, 행태가 구조를 변화시킨다는 원리는 학습의 맥락(context of learning)에서 중요하다. 구조를 무시하는 학문 체계에서는 진정한 이해나 학습이 이루어질 수 없다.
요소와 요소의 관계가 두가지 모순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일때에는 다른 요인을 생각해보아라.요소의 관계(+ - ) 를 표현하기에 있어 모순된 관계에 대해서는 새로운 요소를 생각해보아야한다.
예) 온도와 컨디션
온도 -(양의 관계)- 컨디션
온도 -(음의 관계)- 컨디션
즉 온도가 높으면 오히려 컨디션이 마이너스가 되고 온도가 너무낮아도 컨디션이 마이너스가된다.
수년전 타이완의 쇼잉영(showing young)이란 시스템 다이내믹스 학자가 서울에서 열린 학습조직
워크숍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는 흥미로운 사례를 제시하였다.
칠판에 1.0000001을 적은다음 이숫자를 30제곱하면 어느정도 숫자가 될것인가 질문하였다.
잠시 침묵이 흐른뒤 , 이윽고 영교수는 칠판에 숫자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숫자는 207017133996671569721067이었다.
참석자들은 그토록 조그마한 숫자가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다음 질문은 더욱 놀라웠다. 영교수는 스물 세번째 제곱은 얼마나 될것 같으냐고 질문하였다. 또 잠시 침묵이 흐른뒤 , 다시 영교수는 칠판에 숫자를 써 내려갔다.
그 숫자는 1.5211이었다.
참석자들은 두번째로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너무 작은 숫자를 생각했다가 틀렸고, 두번째는 질문에 대해서 너무 큰 숫자를 생각했다가 틀린 것이다.
파국이론 과 이익과 손해의 비대칭적인 심리이정도가 도움이 될만한 구절이었음.
10만원을 받았을때의 기쁨과 1만원을 잃었을때의 실망감은 비슷하다.
즉 1만원 이익과 1만원 손실은 같은것이 아니다.
돈을 많이 모을수록 비례해서 기쁨이 증가하면 , 돈과 기쁨은 선형적인 인과관계이다. 그러나 돈을 모을수록 돈으로 인한 기쁨은 서서히 감소할 수 있다. 어느정도 돈을 모으고 나면 돈을 모으는 기쁨보다는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나눠주는 기쁨이 더 클 수도 있다. 이런 경우 돈과 기쁨은 비선형적인 인과관계이다. 거꾸로 돈을 모을수록 돈에 대한 기쁨이 더욱 더 증가할 수도 있다. 이러한 사람은 돈을 모으는 그 자체에서 기쁨을 누리는 수전노가 되기 슆다. 이와 같은 수전노의 경우에도 돈과 기쁨은 비 선형적인 관계이다.
(대체 선형적,비선형적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잘 이해가 안된다. 뒤로갈수록 더 이상한 설명이 나온다.)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 이라는 말이 있다 전체는 부분의 곱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부분이 서로 어떠한 관계를 지나면서 전체를 형성하는가 하는 것이다. 부분이 서로 합의 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지만 , 곱의 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다. 전자를 선형적 인과관계, 후자를 비선형적 인과관계라고 한다.
(여기까지는 대충 이해할수가 있다. 물론 일반적인 선형,비선형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돼지 저금통에 1,000원을 넣으면 나중에 1000원을 찾을수 있다. 이는 선형적인 인과관계이다.
그러나 주식 시장은 그렇지 않다. 1000원을 넣어서 10000원을 찾을때도, 아예 한푼도 못 찾을 때도 있다. 이것이 비선형적 인과관계이다. (!!!!!-_-?)
비선형적인 인과 관계는 곡선적이다 . 자연은 언제나 곡선을 만든다. 장미나무의 가시가 아무리 날카롭다고 하더라도 자세히 살펴보면 매끄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은 비선형적인 관계에 기초해있다. 비선형적인 곡선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곡선은 선형아닌가요?ㅡ.ㅡ??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잘 작동하던 인과 관계가 갑자기 작동하지 않는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처음에는 조금만 공부를 해도 성적이 큰 폭으로 상승하지만, 어느정도 수준에 도달하고 나서는 아무리 공부를 해도 성적이 더이상 오르지 않는 경우가 있다.읽으면서 여기서부터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략....
원인 변수가 일정값에 도달하기 전에는 결과 변수가 원인변수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일정값을 넘어서게 되면 결과 변수의 값이 여간해서는 변화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결과 변수를 종종 '꽉 막힌 변수(uptight variable)'라고 한다.
..중략...
그러나 꽉 막힌 변수가 쉽게 인식되는 것은 아니다. 한때 북한에서 천 번 삽질하고 허리를 편다는 천리마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높은 임금을 주고 다그치더라도 안되는 것은 안되는것이다. 교회의 부흥을 억지로 강제하는 경우, 가짜 신도가 넘쳐난다. 안되는 것을 되게 하는 억압적인 사회에서는 거짓이 늘어날수 밖에 없다.
거꾸로 너무 쉽게 꽉막힌 변수라고 단정하는 경우도 있다.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을 철석같이 믿는 남자는 여자에게 열 번 구혼해서 실패하면 포기할지 모른다. 또 삼세번을 믿는 사람은 세번만 시도할것이다. 그여자가 꽉 막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꽉 막힌것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일수도 있다. 한두번 더 구혼을 하면 성공했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전적인 믿음이 정상적인 변수를 꽉 막힌 변수라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사례이다. 인식의 꽉 막힌 변수와 실제로 꽉 막힌 변수를 구분해야한다.
대체 꽉막힌 변수와 학습곡선은 무슨관계가 있으며, 천리마 교회 이야기가 왜나오며,
정상적인 변수와 열번찍어 안넘어가는 여자와는 무슨관계인지;;; 좀 사이비느낌이 오기 시작한다.
상호 의존성
한동물학자가 사자가 사슴을 잔인하게 잡아먹는것을보고 사자사냥을 허용하자는 운동을 벌여
사자사냥이 허용되었다. 그러하여 사자의 숫자가 줄어들자 사슴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몇년뒤 사슴에게 비극이 발생하였다. 사슴의 숫자가 너무 많아져 풀이 부족하여졌으며, 수십만 마리의 사슴이 굶어 죽은것이다. 결국 사슴의 숫자를 줄이기 위하여 다시 사자사냥을 금지하였다. 이번에는 사자의 숫자가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많은 사슴때문에 사자는 풍부한 먹이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슴의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듦에 따라, 이번에는 사자에게 비극이 시작되었다. 경쟁에서 밀린 약한 사자들이
굶어죽기 시작한 것이다. 애당초에 사슴과 사자는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호 의존성을 보지 못하고 죽어 가는 사슴의 비극이라는 표면적인 현상만을 보고 시스템을 변화시킨것이 더큰 비극을 초래한 원인이었다.
먹는자와 먹히는 자 사이의 상호 의존성은 사회에 수없이 발견할수 있다. 깡패와 상인은 상호 의존적인 관계에 있다. 깡패는 상인에게 적당히 돈을 뜯어야한다. (??) 상인의 영업을 방해할 정도로 뜯으면 그 손실은 깡패에게 돌아간다.
(ㅡ.ㅡ상호 의존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한 구문이다.)
피드백사고이런 설명들은 앞에 몇번보아서 적응되었지만 거의 예로 드는 설명이 이런식이다.
"인간이란 스스로 금을 긋고 그 금에 걸려 넘어지는 동물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두가지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첫째, 인간은 피드백 동물이라는 점을 간결하게 보여준다. 사람은 자기 스스로 그은 금을 보고 즐거워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자신이 스스로에게 의무를 부과한다. 사람 스스로 법을 만들고,그 법으로 인해 사람은 죽임을 당하기도한다. 사형수가 억울하다는 점을 알면서도 스스로 만든 법을 어기지 못해 죽이는 경우도 있다.
사람스스로 훈장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놓고, 훈장을 위해 살고 , 훈장을 위해 죽기까지 한다.
둘째, 이말은 인간은 물리적 조건보다도 정신적 구조에 의해 지배된다는 점을 말해준다.
자연에 의해 주어진 환경보다는 인간이 만들어 자연에 부과한 의미가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아무리 배고파도 인도 사람들은 소를 먹지 못하고, 이슬람 사람들은 돼지를 먹지 못한다. 자연에 의해 주어진 규율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스스로에게 부과한 규율이다. 이러한 점에서 의사 결정자에게 가장 중요한 장애는 스스로의 사고 그 자체이다.
성경의 [잠언] 제 5장에는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 죄의 쇠사슬을 만들고 그 사슬에 스스로 옭아맨다. 인간은 사고를 통해 스스로에게 에너지를 부과하기도하며, 스스로의 활동을 구속하기도한다. 이러한 점에서 피드백 관계는 근원적인 의미를 내포하고있다.
한자로 인간의 인(人)자는 두사람이 기대어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고, 간(間)자는 두사람 사이를 의미한다. 서로영향을 주고 받는 피드백 관계가 사람의 본질적 특성이다. 본질적으로 사람은 피드백 동물이라는 점을 인간이라는 한자는 말해주고 있다.
처음 주역과 음양 팔괘를 이야기할때 알았어야 하는데(-_-) 이런 예들을 보며 뭔가 핀트가 어긋나있다는
생각이 자꾸들면서 저자에 대한 신용도 및 이책에 대한 신용도가 떨어졌다.
이런 내용들이 하도많아서 뒷부분은 거의 저자의 설명보다는 저자가 인용한 시스템역학의 내용을
훌터보고 넘어갔다.
혹시나 복잡계과학이나 시스템 역학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 아니면 잘못되고 왜곡된 인식을 가질수있기에
이런 책은 오히려 위험한 책인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