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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호모 코레아니쿠스 - 진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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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재미있어서 저번주 아는 후배에게 부탁해서 사온 책이다.

 진중권 특유의 글솜씨로 한국인의 습속(habitus)을 적나라하게 말하고 있다.
읽으며 꽤나 왜곡된 몇몇 우리나라의 모습들을 느끼게 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우리나라를 나쁘게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사람들의 비판을 염두해두었는지
조심스럽게 현실의 모습만을 이야기하며 그것에 대한 가치판단은 보류해두는 듯한 느낌을 주고있다.
 그렇기에 책내용은 별 거부감없이 반대되는 생각이 없이 쉽게 읽힌다.

 책 내용중 가장 인상깊은 구절이 몇개 있는데,

"한국의 문화와 서양의 문화의 가장 큰 차이는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의 차이이다."

 구술문화는 쉽게말해 어떤 감동적이거나 서사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만들어가는 문화를 말한다.
예를들면 온라인 게임에 열광하는 사람들, 황우석의 신화적인 이야기에 아직도 눈을 못떼는 사람들을 등등.

 문자문화는 명확한 사실 근거에 따라 움직이고 판단하며 이성적으로 움직이는 문화를 뜻한다.
문자 숫자 코드를 조작해 이미지로 세계를 만드는 디자이너 ,설계자 , 발명자,프로그래머들과
사실에 근거한 보도를 하는 언론 등등 이런 전반적인 문화를 말한다.

 저자는 이런 한국인의 구술문화로서의 습속은 급속한 근대화를 거치며 걸러지지 못한 우리나라의
어떤 부자연스러움이라고 말하고 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여기서 정보사회로 넘어가는 그 과정이 유난히 짧은 시기에 이루어졌지만
서구에서는 전근대와 근대,탈근대의 이행이 긴시간에 걸쳐서 일어나 그 문화의 흡수는 천천히 일어났다.
때문에 한국인에게 근대화의 급속함은 강한 전근대성을 남겼고 , 뒤쳐졌던 과거에 대한 기억에서 오는 특유의
성급함이 현재와 미래사이의 거리를 좁혀 한국을 그 어느곳보다 미래주의적인 나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읽은뒤 우리에 대해 다시 한번 뒤돌아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책 내용중 가장 공감가는 구절을 옮긴다.


상형문자 능력

얼마전 강연 후에 다음 일정을 위해 급히 일어서려는데 , 행사를 주최한 아가씨가 즉석에서
핸드폰의 자판을 몇번 누르더니 이렇게 말한다. "상수리에서 양재까지 42분 걸리네요",
함께 일을 하던 방송작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그 짧은 시간동안에
내 핸드폰을 넘겨받아 새벽 5시부터 5분간격으로 벨이 세번 울리게 알람을 설정해주었다.
IT인프라의 대중화는 한국인의 신체 , 특히 젊은 세대의 신체를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화(?)시켰다.

 하지만 여기에도 한계는 있다. 서구사회는 튼튼한 문자 문화의 바탕위에서 천천히 영상문화로 이행하고 있지만, 한국은 문자문화가 허술한 상태에서 급속히 영상문화로 넘어가고 있다.

 여기에는 어떤 불안함이 있다. 문자 능력의 바탕이 없으면 아무리 진화한 정보적 신체라 하더라도 디지털 '기능공'의 수준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자 문화가 강한 곳에서는 네트워크를 통해 지식과 정보가 오가지만, 문자문화가 약한 곳에서는 그저 뜨거운 교감과 반감이 오갈 뿐이다. 한국의 인터넷은 공허하다.

 윈도우 화면의 아이콘, 컴퓨터 모니터위의 모든 영상은 명령어로 그린 그림이다.
영상의 생산자,가상의 제작자,새로운 현실의 창조자가 되려면 문자와 숫자를 다루는 프로그래밍의 능력을 갖추어야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남이 짠 프로그램을 자신의 세계로 소비하는 매트릭스의 주민으로
전략하게 된다. 문자/영상의 병용코드, 즉 문자로 그림을 그리고 그림에서 문자를 읽어내는
디지털 상형문자 능력이 '기획자'로서 미래의 인간이 갖추어야 할 언어능력(linguistic
competence)이 될 것이다.
 프로그래머가 아닌 프로게이머가 강한 나라.
 덜 성숙된 토론문화 , 한국의 인터넷은 공허하다.